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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달이

(게시글 작성 시간: 11-24-2022 10:2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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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을 처음 본 건 한 달여 전 어느 휴일 아침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일교차가 커지면서 물안개가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가을빛으로 곱게 물든 들녘과 물안개의 조화는 정말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라 나같은 사진가들이 즐겨찾는 소재였다.
그래서 나는 달콤한 주말 아침잠까지 포기한 채 부랴부랴 카메라를 챙겨들었다. 목적지는 우리 집에서 5분 남짓이면 걸어갈 수 있는 인근 저수지였다. 젊었을 땐 유명 출사지도 많이 쫓아다녀 봤지만, 언젠가부터 그 소란스러움이 싫어지던 차에 마침 발견한 우리 동네 풍경 명소다.
예상했던대로 집 근처 저수지는 아침 산책을 즐기는 동네 주민들 몇 명만 간간이 오갈뿐 한적했다. 20여 그루 남짓한 메타세콰이어 나무와 이름 모를 나무들이 가을빛으로 예쁘게 단장한 채 나를 반겼다. 그 뒤로 아침 해가 서서히 떠오르면서 저수지 표면에 물안개를 피워올려 환상적인 아침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저수지 이 편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문득 옆에서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껑 꺼엉"인지 "낑 끼잉"인지 표현조차 하기 힘든 난생 처음 들어보는 특이한 동물 울음소리였다. 깜짝 놀라 옆을 보니 내가 선 곳에서 조금 떨어진 저수지 표면 위로 수상한 머리 하나가 불쑥 솟아올라 있었다.
그게 뭔진 몰라도 일단 찍고 보자는 생각으로 카메라 방향을 돌리는 순간 "풍덩" 하는 물소리와 함께 녀석은 사라져 버렸다. '조금만 빨리 움직일걸' 하는 후회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번엔 정면 앞쪽에서 예의 특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돌려 보니 한 녀석 머리가 수면 위로 불쑥 솟아있고, 다른 녀석 하나는 그쪽을 향해 열심히 헤엄쳐 가고 있는 중이었다.
풍경에 맞춰둔 카메라 세팅값을 바꿀 여유가 없어 일단 급한대로 폰카 자동기능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그러는 사이 녀석들은 셔터 소리를 통해 낯선 인간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재빨리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얼떨결에 찍은 사진 몇 장이 아니었으면 내가 뭘 봤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갔지 싶을만큼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찍힌 사진을 통해 어렴풋이 녀석의 정체를 눈치챈 나는 집에 돌아가기 무섭게 아내에게 "우리 동네 저수지에 수달이 사는 거 같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아내는 "산 속 깊은 곳 1급수에서만 산다는 수달이 아파트만 득실거리는 우리 동네에 어떻게 살아?" 하며 내 말을 믿지 않으려 들었다. 이에 내가 폰카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그제서야 아내는 "헐, 대박 사건!!!" 하며 화들짝 놀랐다.
신이 난 나는 자랑삼아 언론사 기자로 일하고 있는 지인에게 우리 동네 저수지에서 수달을 발견했다고 제보했다. 멸종위기 1급동물인 수달이 시내권에서 발견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기에 지인은 즉시 이를 기사화해 올렸다. 덕분에 나중엔 지역방송에서까지 우리 동네 수달의 존재가 다뤄지기도 했다.
문제는 그 뒤에 벌어졌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한 달여 동안이나 아내로부터 예기치 못한 구박을 받아야만 했다. 이유인즉 실물을 너무 보고 싶었던 아내가 저수지 산책을 갈 때마다 고개가 한쪽으로 꺾일만큼 열심히 훑어봤지만 수달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게 수달의 존재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남편 때문이라며, 그로 인해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우리 수달이가 이사간 거"라고 내게 책임을 물었다. 녀석이 언제 <우리 수달이>가 됐는진 알 수 없었지만, 아내에게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억울해진 나는 그 뒤 틈날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저수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수달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뒷끝이 있는 아내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수달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면 앞으로 얼마동안이나 더 들들 볶일지 모를 일이어서다. 그리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비로소, 마침내 나는 <우리 수달이>를 찾아내는데 성공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자그만치 바로 코앞에서 큼직한 물고기 한 마리를 입에 문채 개선장군처럼 당당히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한 달여만에 <우리 수달이>를 발견한 나는 아내에게 즉시 전화해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예상했던대로 아내는 펄쩍 뛰며 좋아했고, 집에 돌아가 사진을 보여주자 그 즉시 다시 가보자며 저수지를 향해 달려갔다. 나는 속으로 '방금 전 먹이활동을 마쳤는데 갸가 아직도 거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자코 아내 뒤를 따랐다.
그런데 있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우리 수달이>는 아침밥을 잘 챙겨먹은 뒤 운동 삼아 저수지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유유히 헤엄을 즐기고 있었다. 아내는 반가운 마음에 들릴듯 말듯 환호성을 내지르며 조심조심 <우리 수달이>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그런 아내의 짝사랑을 받아주기라도 하듯 <우리 수달이>는 저수지 한 가운데서 한참동안이나 자맥질을 하며 우리 눈을 즐겁게 해줬다.
그 뒤 <우리 수달이>를 보러 가는 산책길은 아내와 내게 생활 속 큰 즐거움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아내와 나는 그들 부부가 그곳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기원하고 있다. 기왕이면 **bleep**도 몇 마리 낳아서 가족들이 함께 헤엄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도 갖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부부를 비롯한 산책객들 모두가 뜻을 모아 <우리 수달이>가 마음 편히 잘 지낼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와 관심을 유지하는 일도 필요할 거다.
너무 거창하고 과장된 감정일진 몰라도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게 이런 기분 아닌가 싶다.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수달 두 마리가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에 비춰보면 대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우리에게 또 얼마나 큰 즐거움과 감동을 안겨줄 것인가 싶다. 어느날 문득 선물처럼 찾아든 <우리 수달이> 덕분에 그 작은 부분이라도 누릴 수 있게 됐음에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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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레드블
Expert Level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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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젤리베리
Active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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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도심 속 저수지에 수달이라니!🦦
억울함을 풀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ㅎ.ㅎ